21대 국회 1년에 2000건 처리 반면 미국 영국은 100건 불과
품질도 낮고 국민들도 알 수 없는 법안 남발 의원 수 줄여야
대한민국 국정의 중심에는 3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가 있다. 비록 직접적인 정책 집행 권한은 없으나, 입법을 통해 행정부에게 정책 집행을 강제하는 권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더욱이 국가가 발전하고 의회민주주의가 성숙함에 따라 의회의 권한은 점점 더 막강해지고 있다.
2020년 4월 출범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지난주 금요일 기준으로 총 2만1504건이다. 얼추 3년이 되었으니 1년에 7000건씩 발의되었다는 얘기다. 이중 처리된 안건은 3316건, 가결(일부반영 포함)된 안은 5995건이다. 얼추 일년에 2000건씩 처리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 일본, 영국 같은 선진국들에서 일년에 처리하는 법안은 약 100건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치만 비교해보면 대한민국 국회는 정말 일벌레들만 모여있는 곳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한번 국민들에게 물어보라. 법이 자주 바뀌는 것이 좋은지. 법률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지킬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담아야 한다. 그런데 자고 일어날 때마다 규칙이 바뀐다면 국민들은 몰라서 법을 위반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이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 법률이 해야 할 일은 법적 정의를 무시하는 범죄자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는 역할을 해야지, 단순히 법률을 몰라 헷갈리게 만들어 법률 위반을 유발하는 기능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법률의 기능 중에 ‘법적 안정성’이 중요시 되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교통규칙이 변경된 ‘우회전시 일단 멈춤’이다. 택시를 탈 때마다 물어봤는데 이해하는 것이 전부 제각각이다. 기사님들은 운전 전문가인데도 정확하게 모른다. 사실 도로 표지판 어디에도 언제 멈춰라 안내가 없다. 신호도 없다. 운전할 때마다 어떤 상황 생길지 다 공부하고 외워서 알아서 지키라는 식인데 이게 어떻게 좋은 법이고 규칙이라 할 수 있을까. 자꾸만 바뀌는 교통규칙에 운전자도 보행자도 영 헷갈리기만 한다.
법률 품질도 낮을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복잡한데,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법률안을 발의한다면 이를 제대로 검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정부에서 통과된 부동산 관련 법률, 중대재해처벌법 등이다. 한번 의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본인들이 통과시킨 법들 내용 알고 통과시킨 것들인지. 아마 대부분 본인이 무슨 법을 통과시켰는지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안 찬성 버튼을 누르다니 어찌보면 좀 무책임한 것 같기도 하다.
법은 상품이 아니다. 상품과 달리 국민들에게 법률을 거부할 선택권이 없다. 법률에는 강제성도 있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소지도 많다. 한 번 법률을 제·개정할 때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할 이유다. 각자의 편의에 따라서, 혹은 포퓰리즘에 따라, 혹은 이념에 따라 마구잡이로 입법 발의를 하고,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법률을 통과시킨다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물론 입법 발의 권한은 국회에 있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입법을 부실하게 처리한다면 이는 국회의 존립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는 졸속입법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좋은 방법이야 의원들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입법 발의를 하면 되겠지만, 발의입법이 해마다 늘어만 가는 추세를 볼 때 자정작용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는 고민해 볼 때다. 국회 내든 혹은 제3의 기구를 동원해서든 규제영향 분석을 의무화하던가, 의원입법안은 기본적으로 일몰제를 적용하여 사후에 검증을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법안 발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의원 수를 축소하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마구잡이식 입법 발의를 막아야 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