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국적을 일본이라고 하면 독립운동 부인하는건가
아큐처럼 정신승리로 회피하려 하지말고 현실과 역사를 직시해야
민주당의 국적 마녀사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생뚱맞게도 홍준표 대구시장이 툭 튀어나와 마치 국적 논란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듯이 한마디 보태고 나섰는데 역사에 대한 그의 무지와 자신의 무지를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교만함만 드러내고 말았다. 민주당 의원들이나 홍 시장이나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애써 거짓을 소리친다고 하여 역사적 사실이 바뀔 리 없다는 점에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들 모두 위기에 처한 꿩이 머리를 숲 풀 속에 처박고 도망갔노라고 자위하는 꼴 같기도 하고, 스스로 제 허물을 드러낸다는 뜻의 “봄 꿩 스스로 운다”는 속담을 떠올리게도 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계속 국적 논란을 이어가며 친일 몰이에 나서는 걸 지켜보며 도대체 일제 식민지 시절을 살던 한국인들의 국적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던 차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홍 시장이 단칼에 무 자르듯 “을사늑약은 원천무효”라며 “우리 국적은 임정 수립 전에는 대한제국, 이후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정리하듯 말했다. 언제부터 그가 친일 몰이 세력의 대변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겨우 교과서에서 배운 정도의 알량한 역사 지식을 갖고 나대는 꼴이라니.
과거에는 일제 식민지 시기를 ‘일제시대’라고 했었다. 그 이전 대중은 ‘일정 때“라고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제강점기’라는 북한식 표현이 일반화되었고, 그러면서 심지어 컴퓨터조차 ‘일제시대’라고 쓰면 저절로 ‘일제강점기’로 수정한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횡포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문제 삼으면 친일파로 매도당하는 것을 우려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을 강요하는 것은 홍 시장과 그가 대변하려는 세력이 주장하듯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단으로 점령했다는 뜻을 담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종이 나라를 팔아먹으며 자자손손 부귀를 누린 사실은 은폐한 채 고종을 개명 군주로 추켜세우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해도 일제는 전제군주(따라서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이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있는) 고종과의 조약이라는 형식을 취해 대한제국을 합병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아무리 일제강점기라고 외친다 해도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국적이 대한제국이나,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바뀔 리 없고 역사가 바뀌지도 않는다.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은 홍 시장이 식민지 시대 한국인들의 국적을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이라며 그 까닭을 ‘을사늑약이 원천무효’임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가 외교권을 탈취당한 1905년의 역사 사건과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된 1910년의 사건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가 굳이 “을사늑약”이라고 한 것도 시류에 영합하고 있을 뿐임을 보여준다. 과거(시점이나 기간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에는 ‘을사조약’이라고 했고,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썼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을사늑약’으로 바뀌었다. 물론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한 조약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 당시의 명칭을 그대로 쓰되 그 본질을 설명하는 게 바람직할 뿐 아니라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애써 ‘늑약’이라는 표현을 일반화함으로써 ‘일제의 강제’를 부각하려 한다. 비록 ‘일제의 강제’가 역사적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사 해석의 의미를 담은 ‘늑약’을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다른 역사 해석’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 전체주의라 할 수 있는데 아무도 문제 삼기는커녕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게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 국적을 일본이라고 하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한국인들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점과 독립운동 부인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독립운동을 한 것이고, 임시정부도 그래서 만든 것 아닌가. 그런데도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나라 뺏겨서 국적이 일본에서 강제로”라고 답변하는 과정에서 박홍배 인주당 의원은 “그럼 우리 부모님이 일본인입니까?”라고 말을 끊은 가운데 어이없어하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견강부회로 친일 몰이를 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친일 몰이를 하기 위해 식민지 시기 국적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며 식민지로 전락한 뼈아픈 역사를 부인하려는 것이나 홍 시장이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은 한국판 ‘아큐정전’이라 할 만하다. 실제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려 하기보다 정신승리의 역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다. 중국의 문호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 속 주인공 ‘아큐(阿Q)’는 다혈질에다가 자존심이 강하지만 어리석고 무지하며 무기력한 인물이다. 그는 현실에서 늘 패배자의 처지를 면치 못하는데 그걸 정신승리의 방법으로 이겨내려(사실은 사실을 왜곡하여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다. 그건 마치 꿩이 머리를 풀 속에 박고 자기가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항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여 기어이는 도둑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다. 우리가 치욕의 역사를 부인한다고 해서 역사가 없어지거나 바뀌지 않는데도 애써 부인하는 것이 ‘아큐’나 꿩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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