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야 어찌 되든 정권만 잡으려는 게 포퓰리즘
혼란을 통해 기회를 잡으려는 세력 경계해야

생태계란 말이 있다. 생태계는 환경과 그 유기체가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하는 시스템으로서 우리와 같은 생물들은 주변 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탄소배출 저감 노력은 지구 차원의 생태계 유지를 위한 인류의 대표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 유래한 생물학적 차원의 생태계란 개념은 점차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곳에서 사용이 되고 있다. 인간이 구성한 사회란 개념 자체가 하나의 환경으로서 그 안에서 생활하는 개인이나 집단과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개별 구성원의 활동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등 조절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도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국가경제라는 큰 생태계 안에 농수산업과 같은 1차 산업의 생태계가 있고 자동차, 전자, 식음료, 섬유, 패션 등 2차 산업의 생태계가, 그리고 서비스업과 같은 3차 산업의 생태계가 있다. 국가별로는 우리처럼 전 산업 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산업 생태계를 갖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농수산업 등 1차 산업 중심이나, 관광업 등 3차 산업에 치우친 경우가 많고, 제조업이 있는 경우에도 일부 산업들만 있는 국가들이 많다.
사실 따지보 보면, 제조업의 경우 식료품 제조업에서부터 인공위성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대만 등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생태계가 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풍부하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이야기하는 서유럽의 국가들을 들여다 보면, 그들이 잘 하는 산업 몇 개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산업이나 대표 기업의 경영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가적 위기가 닥치기 쉽다. 반면, 제조업이 고르게 발달한 나라들이 경제 강국의 상위 리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 생태계는 매우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건강하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생태계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불과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다. 당시 기준으로 우리의 경제 생태계는 농업 외에는 변변한 것이 없었고, 그마저도 농업 생산성은 낮았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종은 몇 개 없었고 지배종의 분포나 세력이 미약했다. 그랬던 우리 경제 생태계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등장과 기업인이라는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식량을 소비하는 개념의 ‘식구’ 수준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을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탈바꿈시키고 제조업 생태계를 성장시켰다. 초기에 따로 발달하기 시작했던 각 산업들은 서로를 먹이 사슬로 해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면서 제각기 덩치를 키워 더 큰 생태계를 조성했다. 제조업 생태계가 발달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 등 3차 산업 생태계가 발달하게 되었고, 이에 점차로 1, 2, 3차 산업을 아우르는 거대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자랑할만한 쾌거 아닌가? 그런데, 이런 거대 산업 생태계 구축의 역사를 가능케 한 가장 핵심 동인은 무엇인가? 1960년대 당시에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우리보다 잘 살았던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과 우리가 달랐던 것은 혜안을 가진 지도자와 기업인뿐이었다. 우리에겐 그들이 있었고 다른 나라에는 그들이 없었다. 그들은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구인회, 최종현과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박정희는 경제 생태계를 설계했고, 기업인들이 나서서 각 산업별 생태계를 구축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 넣은 것은 메기 효과와 같다. 안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잘 사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을 보여주고 나도 잘 살기 위해서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게 한 것이다.
물론 생태계에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도 기근이 닥치거나 홍수가 오고, 한파와 혹서가 오기도 한다. 지배종이었던 동식물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 경제 생태계에도 70년대 오일쇼크, 90년대말의 IMF 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닥쳤다. 우리 경제 내에서도 외부 충격으로 기업들이 문을 닫고 주인이 바뀌거나 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해서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였다. 생태계 내에 초래된 위험은 생태계가 가진 복원력으로 생태계 내에서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경제 생태계는 새로운 위험을 목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발전시켜 온 것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생태계였다. 이 자유시장경제 생태계에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종이 침입하여 자유시장이라는 지배종을 밀어내려고 하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경제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권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포퓰리즘이라는 도구다. 또한 포퓰리즘이라는 종은 변이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종종 사회주의라는 종과 결합한다. 사회주의 생태계는 이미 1980년대 후반에 자체적인 문제로 붕괴하여 멸종 위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 사회주의가 포퓰리즘과 만나면 급속한 회복력을 보이고 더 강력한 종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탄핵이라는 외부 충격은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종에 비하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태계에 비유하자면, 어느 한 지역에 큰 홍수가 한번 난 격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생태계 자체가 변화한 것에 해당한다. 마치 육지가 바다로 변한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 경제의 상황을 보자면, 홍수가 난 것은 분명한데, 이 홍수가 노아의 방주때처럼 모든 땅을 집어삼킬 정도로 끊이지 않는 큰 비가 되어 육지가 사라지고 모두가 바다가 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탄핵 정국을 질서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 경제 생태계는 회복력을 발휘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지속적인 혼란과 이를 통해 기회를 잡으려는 세력이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종을 더 풀어 놓는다면 우리 경제 생태계는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다. 우리 몸의 작은 암세포가 결국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듯, 우리 경제에 자리잡은 포퓰리즘이 우리 경제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포퓰리즘이 더 자라고 사회주의와 변이를 통해 더 확산되기 전에 이 포퓰리즘의 씨앗 만큼은 뽑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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