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24 등에 나온 외국 감독들 시장에 나올까봐 강행
정몽규의 4선 도전 야심과 홍명보의 돈+권력 야심 합작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 회장의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우격다짐 밀어붙이기 선임은 우리나라 체육 단체가 갖고 있는 총제적 문제를 압축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떠한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단체내 이너서클이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이권을 영구히 장악하는 ‘우리끼리 끼리끼리’ 문화다. 정부의 보조금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다른 체육단체와는 달리 대한축구협회의 한해 예산 규모는 1000억원이 넘는다. 스포츠 복권인 토토로부터 받는 수익금과 10회 연속 출전으로 월드컵을 치를 때마다 성적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로 받는 배당금, 스폰서십, 중계권료, A매치 수입,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원금 등으로 이미 2011년에 예산 1000억원을 돌파했고 2024년 예산 1876억원은 축구를 제외한 대한체육회 모든 가맹단체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다.
대한축구협회는 정몽준에 이어 정몽규까지 현대가(家)가 27년이나 독점하고 있다. 물론 현대가가 축구 발전에 미친 영향을 폄훼해선 안 되겠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영리법인이 아닌 비영리 사단법인이고 회장은 협회에서 선임한 대표일 뿐 협회장이 협회에 지분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공공 사업을 사적으로 운영하면 안 된다. 정몽준은 거스 히딩크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찍기라도 했지만 정몽규는 수많은 논란과 그로 인한 사퇴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12년 장기집권도 모자라 4연임을 꾀하면서 축구협회를 사유화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어 이게 통과되면 정몽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처럼 셀프 종신회장이 될 수 있다.
그 방편이 홍명보 감독 선임이다. 이미 오래전에 국내 감독으로 내정했음에도 외국 감독을 물색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5개월을 흘려 보낸 후 회장은 모르는 일이고 기술이사가 독단으로 결정했다는, 축구사에 길이 남을 변명까지 하면서 홍명보를 선임한 이유가 바로 정몽규의 영구집권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파 아메리카와 유로2024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양 대회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기라성 같은 외국 감독들이 세계 축구 시장에 나오게 된다. 지금 홍명보를 빨리 임명하지 않으면 언론과 축구 매니아들이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며 여러 외국 감독들을 물망에 올릴 것이 뻔하다. 현재 국가대표 축구팀의 주요 멤버들은 역대급이다. 홍명보로도 본선 진출은 떼어놓은 당상이고 어찌 하다보면 운 좋게 16강 진출도 할 수 있으며 설혹 결과가 안 좋아 비난을 받아도 그때뿐인 걸 정몽규는 잘 알고 있다.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 조중연 전 축구협회 회장, 차범근 전 FIFA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정해성 전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의 공통점은 이들이 축구협회를 좌지우지하는 고려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끼리끼리 고대끼리’ 시스템은 축구협회의 고질병이다. 고대 출신 회장이 고대 출신 기술이사를 시켜 고대 출신 감독을 선임했다. 이들은 경기 결과보다 고대끼리가 우선이다. 홍명보는 ‘끼리끼리 고대끼리’의 중심 인물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감독이었던 홍명보는 고대 후배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발탁하고 2년 뒤 런던올림픽에서도 다시 한번 와일드카드로 박주영을 선택했다. 홍명보는 감독이 될 때 “활동 리그와 관계 없이 소속팀에서 꾸준히 뛰는 선수를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박주영 기용으로 자신이 세운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일자 홍명보는 말을 바꿨다. “A급(유럽 리그)에 속해 있지만 뛰지 못하는 선수는 B급인데 K리거들은 그보다 못한 급”이라고 박주영을 옹호하며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폄하한 것이다.
당시 박주영은 소속팀 연고지인 모나코 공국으로부터 10년 장기체류 허가를 받으면서 '병역 기피 의혹'을 사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홍명보는 이때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는 명언까지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그를 옹호했다. 2013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는 1년 가까이 박주영을 소집하지 않다가 정작 최종 엔트리에 박주영을 올렸다. '말 바꾸기', '의리 축구' 등 비판 여론이 높았지만, 홍명보는 "대체할 공격수가 없었다"고 일축했다. 정몽규의 묻지마 고대끼리 홍명보 감독 임명처럼 홍명보도 묻지마 고대끼리로 박주영을 무한 기용한 것이다. 당시 대표팀은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1무 2패로 16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승 탈락이라는 흑역사를 썼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 감독에 항명하고, 드래프트 제도를 무시하면서 구단을 마음대로 골랐으며, 원하는 팀에 안 보내준다고 화풀이하듯 애먼 상대 선수들을 걸핏하면 백태클해서 상처를 입혔다. 홍명보는 계약금과 연봉이 타 종목에 비해 낮게 책정되었다는 불평과 함께 가고 싶은 구단을 직접 선택하겠다며 드래프트 제도를 거부했다. 포항제철은 당시 홍명보를 아마추어팀에 선수 등록을 하는 우회 형식으로 입단시킨다. 그러나 홍명보는 꼼수까지 써가며 자신을 받아준 포항제철 모르게 LA 갤럭시와 계약을 맺어 이적 시장의 시스템을 제멋대로 붕괴시켰다. 당시 소속 구단이 이적에 동의하지 않자 K리그에서 출전하는 경기마다 허술한 수비와 거친 플레이로 포항 팬들의 빈축을 사던 홍명보는 급기야 송종국이 네덜란드 리그 진출을 확정짓고 떠나기 전 부산 팬들 앞에서 가진 고별전에서 송종국에게 불필요한 거친 태클을 넣어서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됐다. 동료 선수를 부상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동업자 정신 즉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땅에 팽개쳤다.
스포츠 전문지의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은 필자와의 통화에서 “홍명보는 권력의 화신이다. 돈만이 아니라 권력욕도 매우 강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명예회복을 통해 차세대 축구 권력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와 함께 4강 신화를 이룩한, 그러나 침묵했던 후배 축구인들이 홍명보와 정몽규는 안된다며 이번에는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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