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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노동자는 무조건 약자? 빌딩이 사각형이란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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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노동자는 무조건 약자? 빌딩이 사각형이란 논리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5.03.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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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전봇대도 어두울 때 보면 사다리꼴의 사각형일뿐
입체적 사고로 보면 각 주체 간 사적 계약에 맡겨야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전 발언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전 발언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2025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노동시장 자유도 점수를 100점 만점에 56.4점으로 평가했다. 평가 대상국 184개국 중 100위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성적이다. 더욱 낯 뜨거운 것은, 5개 등급 중 ‘부자유(Mostly Unfree)’를 받아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이나 북한이 받은 최하위 등급인 ‘억압(Repressed)’을 겨우 면했다는 사실이다. 5단계 등급은 완전 자유(80점 이상), 거의 자유(70~79.점), 자유(60~69.점), 부자유(50~59.점), 억압(~49.9점)으로 나뉜다. 꼴찌에서 바로 한 단계 위 등급을 받은 것이다.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긴 하다. 지금도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 문제로 ‘반도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문제는 왜 이렇듯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가 없는가이다.

빌딩이나 아파트를 한쪽 면만 보이는 지점에서 보면 사각형의 평면체다. 그렇지만 우리는 빌딩이나 아파트를 한쪽 면만 본다고 해도 그걸 사각형의 평면체라고 생각지 않는다. 전봇대도 어두울 때 보면 사다리꼴의 사각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전봇대가 사각형이 평면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아파트나 빌딩 또는 전봇대가 사각형의 평면체가 아니라 부피를 갖는 입체형의 구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같은 조건에서 그걸 바라보면 사각형 평면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사각형 평면체라고 생각지 않는 것은 경험을 통해 그것이 입체형 구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빌딩이나 아파트는 그나마 한쪽 면은 사각형이다. 그런데 전봇대는 한쪽 면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빌딩이나 아파트와 같이 육면체도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 보면 사각형이 아니라 원이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게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점을 망각한 채 산다. 그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인 양 여기며 그걸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우리 삶을 규정하려 한다.

그렇게 규정된 삶이 관습이 되고 문화가 된다. 관습과 문화는 법과 제도보다 더 뿌리가 깊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 그 구성원들이 그 사회의 관습과 문화 속에서 살며 형성한 인식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꾸지 못하면 혁신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한다면 ‘다른’ 생각은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벗어던지지 못할까. 아파트나 건물 또는 전봇대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물이나 현상은 한쪽 면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거나 잊는 게 문제다. 어쩌면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노동시장 경직성의 배경이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게 산업혁명 이래 오랜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지 않도록 법으로 제도화하고 사용자와의 임금협상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만들어 왔다. 여기서 제도화라고 하니 좋은 뜻으로 읽히겠지만 그게 아니다. 제도는 법을 통해 만드는 것이고, 그건 곧 국가가 법으로 강제한다는 뜻이다.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걸 용인해 온 것은 노동자는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기 때문인데, 그 암묵적 합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고정관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지금은 산업혁명 시절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지 누구도 억지로 하라고 시킬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대우를 받는다면 그 일을 서로 차지하려 덤빈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같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너 유능한 사람을 쓰려 할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법과 제도로 사용자는 물론 노동자까지 강제한다. 더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가 옳은 일일까.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은 더 이상 필요치도 않거니와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냥 각 경제 주체 간 사적 계약에 맡기는 게 합리적이고 경제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사람들, 특히 정책을 주무르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낡은 인식의 틀 속에 갇혀 있으니 10대 경제 대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 전체주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안팎의 도전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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