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을 철창 안에 가둬놓은 유통산업발전법, 이래놓고 기업 탓만
재래시장은 대형마트 규제한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 논리로 살아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영업 실적 악화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사태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개점일을 제한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새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되레 유통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조롱이 나온다. 물론 홈플러스의 경영 위기는 대주주인 MBK가 사모펀드다 보니 온라인 쪽으로 유통업계의 판도가 바뀌는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 문제도 거론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규제도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래서 굳이 유통산업발전법을 찾아봤다. 턱 하고 숨이 막혔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실제 법률을 읽다 보니 유통산업을 철창 안에 가둬놓은 듯한 느낌이 확연했다. 법은 제1조 ‘목적’에서 “이 법은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대목은 구토를 느끼게 한다. 포퓰리즘에 절어 있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기에 그렇다. 도대체 왜 균형있는 발전이어야 하는가. 그보다 먼저 균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왜 이런 법률이 필요한지 의문이 안 들 수 없다.

제3조 ‘유통산업 시책의 기본 방향’에 이르면 할 말을 잊는다. 이는 제1조 목적을 위해 정부가 마련해야 할 시책을 열거해 놓은 것으로 8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항 ‘유통구조의 선진화 및 유통 기능의 효율화 촉진’은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시책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지만 좋은 뜻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다. ‘유통산업에서 소비자 편익의 증진’을 규정한 2항도 그렇게 보아줄 수 있다. 그런데 3항 ‘유통산업의 지역별 균형발전의 도모’나 4항 ‘유통산업의 종류별 균형발전의 도모’는 이해 불가다. 왜 유통산업에서 지역별 균형과 종류별 균형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지만, 왜 그걸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하도록 하는지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왜 이런 규정을 두었을까. 그 의문은 제8조에 이르면 풀린다.
제8조는 “대규모점포를 개설하거나 전통 상업 보존 구역에 준대규모점포를 개설하려는 자는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산업통상자원부령에 정하는 바에 따라 상권 영형평가서 및 지역협력계획서를 첨부하여 특별자치시장‧시장‧군수‧구청장에게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상에나. 점포를 개설하려는 자, 곧 사업자는 그 점포가 대규모든 소규모든 규모에 상관없이 사업성을 파악하기 위한 필요에서 시장조사나 하면 그만이지 상권에 미칠 영향까지 파악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상권 영향평가서를 강제한다. 전통 상업 보존 구역, 곧 전통 재래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일 텐데, 그런 필요성이라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지 왜 그걸 사업자에게 강제한단 말인가. 거기다가 지역협력계획서까지 내라니.
이건 국가의 횡포다. 재래시장을 살리는 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인지도 의문이지만, 의무라 생각한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지 왜 그걸 민간사업자에게 부담시키냐 말이다. 법으로 강제하니 민간사업자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입법자들이 이런 게 국가의 횡포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지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더라도 사업성이 있다면 사업자는 아무리 부당하더라도 그 부담을 감내할 수 있다. 문제는 사업성이 떨어질 때다. 그 경우 국가의 부당한 횡포를 감내하면서까지 사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법에 ‘소비자의 편익 증진’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게 허울뿐임이 여기서 드러난다.
‘대규모점포 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 등’을 규정한 제12조는 이 법의 백미이자 시대착오적 규제의 핵심이다. 12조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마트와 준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여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의 범위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매월 공휴일 중 이틀을 의무 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사항은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 법에 따라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 두 차례 의무로 휴업해야 하고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하고 있다.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도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온라인 유통업체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국가가 오프라인 업체의 손실을 보상해 주는가. 그러자면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에 그래서도 안 되고, 현실에서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애당초 그런 부당하고 불합리한 법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는 이야기다.
재래시장을 정부가 개입하여 살리는 게 합리적이지도 않거니와 그럴 수도 없다. 대형마트가 인근에 들어선다 해서 재래시장이 망한다고만 볼 수도 없거니와 망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이익이라면 그 길로 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 대형마트가 오히려 재래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재래시장 상인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장은 진화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대부분의 불합리한 규제는 국가의 횡포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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