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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의 글로벌 스탠더드]상법 개정은 더 이상 기업 하지 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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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의 글로벌 스탠더드]상법 개정은 더 이상 기업 하지 말라는 것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5.0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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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정치 논리로 경제를 지배하려 하면 혼돈만 극대화돼
보수적 경영으로 세계적 기업 키웠다는 사례는 없어
상법개정안 그래픽 ⓒ연합뉴스
상법개정안 그래픽 ⓒ연합뉴스

경제는 경제 논리로, 정치는 정치 논리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와 정치가 다르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정치 논리로 경제를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혼돈과 미스매칭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상법 개정안이 그렇다. 현재 상법을 개정하자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의 대부분은 정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모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나를 지지해 준 국민 뿐만 아니라 나를 지지해 주지 않은 나머지 국민의 이야기도 겸허히 듣고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다. 왜냐햐면 어차피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이는 거짓말에 해당하겠지만 우리는 이를 거짓말이라 하지 않고 ‘정치적 수사’라고 한다.

현재 제안된 상법 개정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조항을 예를 들자면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하고,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는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이다. 이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즉, 이사를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으로 고치고 ‘회사와 주주’를 ‘국가와 국민’으로 고쳐 읽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맞장구를 칠 것이다. 관념적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상식적으로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대통령(국회의원)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총국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국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는 선언적 문구를 바탕으로 나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지, 금전적으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단적인 예로, 국민연금 개혁안이 그러하다. 국민연금은 현재와 같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고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역대 정부에서 연금 개혁에 대해서 고민해 왔고, 그 때마다 소득대체율을 인하하고 수급 연령을 상향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실제로 1998년과 2007년의 연금개혁은 그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결론적으로 보면 다수의 국민에게는 손해가 발생한 것이었지만, 수급 구조 개편을 통해 국민연금의 안정성은 개선됐다. 이러한 조치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만약 이를 투표로 결정하였다면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했을 수도 있고, 소송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많은 국민들이 소송에 참여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정치적 책임을 졌을 뿐이다.

하지만 기업의 경우에는 다르다. 정치적 사안과 달리 기업의 결정에는 경제적 책임이 따른다. 소액주주 1인 소송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기업의 세계다. 상법에 총주주,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다는 말이 선언적인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경영진은 경제적 책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도전을 댓가로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사안 하나하나에 모든 주주의 이익을 다 고려해서 기업 의사 결정을 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것은 차라리 기업이 의사 결정을 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말과 같다. 그래야 그나마 모든 주주의 이해를 계산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송은 이익을 본 사람은 가만히 있고 손해를 본 사람만 제기하는 것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도전적 기업경영보다는 보수적 경영에 더 유인이 생긴다. 하지만 어느 경영학 교과서에도 보수적 경영으로 세계적 기업을 키웠다는 사례는 찾을 수 없다. 기업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외에도 상법에는 많은 독소 조항이 있다. 이들 또한 정치적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기업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오히려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이해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이들 조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컬럼에서 논하기로 하자.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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